[석율그래] 말하지 않아도

W. 적운









*






서류가방을 고쳐 매면서 석율은 16층에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퇴근하기 직전까지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느라 굳어버린 근육을 풀 듯 고개를 좌우로 뚝뚝 꺾은 그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자 가벼운 흔들림과 함께 로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석율은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전송했다.

 

 

 

 

[드디어 끝났다]

[퇴근]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메시지 앞의 숫자를 바라보던 석율은 휴대폰을 집어넣고서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거래처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 뒤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정시에 퇴근을 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퇴근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거래처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이 와중에 과장님과 성 대리는 외근 때문에 함께 나가버린 탓에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퇴근 직전에 겨우 전화를 받아 상사들에게 구두로 보고하고서 결재 서류까지 작성해놓고 나니 이 시간이었다.

 

 

 

그나마 요 며칠간 밤낮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업무는 제 손을 떠난 상태였고, 보고서도 작성했으니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석율은 엘리베이터 벽에 가볍게 머리를 기댔다. 며칠을 외근이니 잔업이니 하도 시달렸던 통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장그래 보고 싶다

 

 

 

아까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퇴근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놓기는 했지만 읽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장그래 역시 바쁘기는 했지만 자신이 워낙 바빴던 탓에 요 근래 데이트는커녕 주말에도 제대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었다. 데이트 대신이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얼굴을 보지 못하는 만큼 틈틈이 전화며 메시지로 근황을 묻고 이야기를 하곤 했었고, 간밤에도 자신의 생일을 핑계 삼아 꽤 길게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메시지나 전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퇴근 했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해볼까.

그런 생각과 함께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면서 석율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에 혹시나 상사들인가 싶어 가늘게 뜬 눈으로 액정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액정 위에 떠오른 이름을 바라보며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석율은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얼른 전화를 받았다.





마침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우리 통했나보다.”

- 메시지 이제 봤어요, 퇴근했어요?

, 아직 회사 로비지만

- 고생했어요.

장그래도, 오늘 하루 수고했어.”

 

 

 

짧은 인사치레일지언정 조금 전까지 어깨를 짓누르는 듯 했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기껏해야 평소와 다름없는 소소한 이야기였지만 연인의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나는 듯 했다. 새삼스럽게 간질간질한 기분에 가볍게 뺨을 긁적이며 석율은 통화를 이어나갔다.

 

 

 

"너는, 퇴근했어?"

- . 외근 나갔다가 퇴근하는 길이에요.

"그렇구나"

 

 

 

시간 괜찮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을래?

그리 말하려다 말고 석율은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피곤할 텐데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안에서 서로 상충하고 있었다. 물론 괜히 생일을 내세워서 얼굴을 볼 수도 있는 일이었고, 그런다고 해서 그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지는 않을 테지만 굳이 그런 억지를 부려가면서까지 그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어서, 미련이 남은 머릿속을 털어내듯 고개를 좌우로 저은 석율은 괜히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있지? 요즘 독감 유행이라던데.”

- 석율 씨야말로, 맨날 덥다 그러면서 얇게 입고 다니고

원래 패셔니스타는 다 그런 거야.”

- 저번에도 그러다 감기 걸렸었잖아요.

그 땐 그 때고.”

- 하여튼, 말은 잘 해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핀잔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던 석율은 건물 입구에 멈춰선 채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져서 어둠이 내린 저녁의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몸에 열이 많은 자신에게는 쌀쌀한 정도였지만 전화 너머의 연인에게는 조금 추울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해도 이미 모든 신경이 휴대폰 너머에 향해있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래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 무슨 일 있어요?

있긴 있는 거 같은데어떡하지?”

- 무슨 일인데요.

나 장그래 보고 싶어.”

- …….

 

 

 

익히 예상했던 그래의 반응에 석율은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지금 같은 반응으로 보아하니 아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뻔했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표정에 입매를 끌어올려 웃던 찰나, 이어지는 목소리에 석율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 그런 말은 얼굴 보고 해주지.

"여보세요, 장그래 씨 맞습니까?"

- 끊을게요.

아냐, 농담이야, 끊지 마근데 우리 못 본지 오래 되긴 했다, 그치?”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주워섬기면서도 석율은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지금 당장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지만,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가 피곤하지는 않을지 신경을 쓰는 자신이 있었다.

 

 

 

말이라도 꺼내볼까.

그런 생각과 함께 멈춰있던 걸음을 옮기던 찰나,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작게 이름을 불렀다.

 

 

 

- 한석율 씨.

?”

- 잠깐 오른쪽 좀 볼래요?

오른쪽?”

 

 

 

별다른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고개를 돌리던 석율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건물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익숙한 인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퇴근한다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인지 정장과 코트차림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내리고 있는 머리를 올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가 일러준 쪽을 바라보며 얼마간 굳어있던 석율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반쯤 뛰듯이 걸음을 옮겨 옅게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기습 방문이 성공한 게 마음에 든 모양인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양 뺨을 감싸 쥐었다.

 

 

 

석율 씨?”

…….”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 모양인지 한참 그의 얼굴을 붙잡고 있던 석율은 이내 손을 움직여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확인했다. 난데없는 행동에 당황스러운 눈을 하던 그래는 만류하듯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뭐하는 겁니까?”

확인.”

?”

 

 

 

뜬금없는 소리에 그래가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연거푸 그의 얼굴을 확인하던 석율은 손을 미끄러트려 그의 어깨를 짚었다.

 

 

 

진짜 장그래다

그럼 뭐, 가짜도 있습니까?”

 

 

 

여전히 영문 모를 그의 반응에 괜히 뾰로통하게 대답하던 찰나, 붙잡은 어깨를 당겨 안는 바람에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그래는 그대로 그의 품에 끌어 안겼다. 얼굴을 본 것도, 이런 식의 스킨십도 오랜만인지라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계속 안겨 있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지금 서있는 곳이 자신의 전 직장이자 그의 회사 앞이라는 사실이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그나마 퇴근시간이 좀 지난 상태라 다행이긴 했지만 만에 하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났다간 곤란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잠시 눈을 굴리던 그래는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한 그의 등을 조금 아프게 두들겼다. 다행히 석율도 자각은 있는 모양인지 닿아있던 체온은 금방 멀어졌다. 멀어진 체온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얼굴에 잠깐 스쳐지나간 아쉬운 기색과 함께 작게 아랫입술을 무는 모습에 그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석율이 어떤 기분일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연인을 앞에 두고서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마냥 아쉽기만 할 터였다-지금 제가 그런 것처럼.

 

 

 

초조한 듯 잠시 미간을 긁적이던 석율은 가만히 그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입매를 끌어올려 웃은 그는 그래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어깨를 감싸 안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래는 시선을 도로 앞으로 두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깨에 손이 올라간 시점에서 몸을 돌려 빠져나왔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이 뭘 원하는지 읽어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석율이 바라고 있는 것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그의 눈에서 읽은 탓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아무런 미동이 없는 그의 반응에 그래는 눈을 들어 옆에 선 석율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조금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던 그래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회사에 머리 넘기고 다니지 말라니까.”

 

 

 

새삼스럽게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말투가 묘하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새어나올 뻔한 웃음을 속으로 삼킨 그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태연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오늘 거래처 몇 군데 다녀오느라

아니, 거래처 가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

장그래 섹시한 건 나만 보고 싶단 말이야.”

…….”

 

 

 

그리고 자연스레 흘러나온 석율의 대답에 그래는 금방 입을 다물어버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귓바퀴가 터질 것처럼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석율이 이런 말들을 한 적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말들을 어쩌면 이리 태연하게 할 수 있나 싶었다.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에 말없이 시선을 앞으로 돌리던 찰나, 자신의 어깨에 둘러진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손과 석율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래는 그의 팔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다. 그것이 신호인 양 걸음을 옮기는 그를 따라 그래는 순순히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잠깐 걸음을 옮겨 회사 뒤편으로 돌아들어간 석율은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폈다. 원래도 다니는 사람이 얼마 없는 길인데다 퇴근시간도 지난 만큼 주위에 인기척은커녕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게다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탓에 평소보다 더욱 조용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몇 번 더 주위를 살피던 석율은 그제야 그래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선이 얽혔을까, 석율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과 동시에 그래는 눈을 내려감았다. 아주 잠깐이나마 머릿속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능은 솔직했다. 조금 급하게 부딪혀오는 석율을 달래듯 입술을 열자 혀가 밀려들었다. 입 안을 훑는 그의 혀에 자신의 혀를 감자 목덜미를 감싸 쥔 석율이 더욱 깊게 입을 맞췄다. 점점 깊어지는 입맞춤에 그래는 손을 움직여 더듬더듬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 손짓이 밀어내는 건지 끌어당기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슬쩍 눈을 떠 그래의 손을 확인한 석율은 이내 입술을 떨어트렸다가 쪽 소리가 나도록 짧게 입을 맞췄다. 그마저도 아쉬웠는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그래를 바라보던 석율은 숨을 고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 갖고 올 걸.”

…….”

 

 

 

이어진 말에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이내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감쳐무는 그래의 모습에 석율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한 게 분명했다. 딱히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제가 그를 보고 싶었던 만큼 그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게 분명했다. 어지간하면 거의 올 일이 없을 전 직장에 자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반증이라면 반증이었다.

 

 

 

새삼스럽게 다시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라, 다시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 석율은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를 품에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안겨오면서 등에 팔을 두르는 그의 행동에 석율은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보고 싶었어.”

저도보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침묵을 굳이 깨트리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굳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보다 이렇게 체온을 나누며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끌어안은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석율의 탄식 같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 진짜 좋다……

…….”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그의 속마음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래는 대답 대신 등을 가만히 도닥였다. 그 손길에 마치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그래의 어깨에 가볍게 이마를 비비던 석율은 곧 몸을 떨어트리고서 시선을 마주했다.

 

 

 

얼마간 말없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찰나, 보조개가 패도록 씩 웃는 석율의 얼굴에 그래는 괜히 눈을 흘겼다. 그러자 자연스레 손을 감싸 쥐듯 덮어오는 그의 체온에 금방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가만히 손을 펼치자 당연하다는 듯 손마디 사이에 손가락을 얽어오는 그의 손을 그래는 조금 힘을 줘 맞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석율은 그제야 본론을 꺼내놓았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쩐 일이야?”

일찍도 물어보네요.”

 

 

 

마치 타박이라도 하는 듯한 그래의 목소리에 석율의 눈썹이 조금 아래로 처졌다. 물론 고작 이 정도로 토라지거나 기분이 상한 건 아닐 테지만, 왠지 그의 모양새가 어딘가 풀이 죽은 강아지 같아서 귀여웠다. 다만 이 감상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가 없을 거 같아서, 감상을 애써 속으로 삼킨 그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눌러 참고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거래처 갔다가 퇴근하는 길에 들렀어요, 아저씨 보려고.”

진짜 나 보러 온 거야?”

 

 

 

방금까지만 해도 시무룩한 척 하던 주제에 대답을 듣자마자 반색하는 석율의 태도가 정말로 커다란 강아지 같아서, 겨우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린 그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아저씨 생일이니까같이 저녁 먹으려고 왔죠.”

…….”

저번 주말엔 우리 서로 바빠서 못 봤잖아.”

어떡하지

?”

 

 

 

곤란하다는 듯한 석율의 대답에 그래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그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는 비어있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무 좋아서 큰일인데 지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석율은 어느새 드문드문 비치는 불빛에도 확연히 티가 날 만큼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붉어져있었다. 딱히 거창한 이벤트를 해준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다시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라, 석율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던 그래는 맞잡은 손을 가볍게 팔랑팔랑 흔들었다.

 

 

 

생일 축하해요, 석율 씨.”

말로만?”

그건 아니지만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래는 둥그렇게 뜬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에게 줄 선물이 가방 안에 들어있기는 했지만, 그가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런 사정 따위 알 리가 없는 석율은 그의 까만 눈을 마주한 채 진지한 얼굴로 짧고 간결한 대답을 꺼내놓았다.

 

 

 

.”

또 그런다.”

농담 아닌데?”

 

 

 

언제나 그렇듯 입술을 비죽이며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간 석율은 낮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번 주말엔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미쳤어, 진짜!!”

 

 

 

조금 전과는 반대로 이번엔 그래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석율은 보조개가 패도록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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