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리가 넘겨주고 간 서류들을 바라보며 석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제게 서류를 가득 안겨 준 사이코패스-성 대리-는 외근이랍시고 사무실을 비워버린 지 오래였다. 하는 일도 없이 회사를 날로 다니는 월급도둑 주제에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간다 생각하니 제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왠지 화가 치미는 기분이었다.
…이걸 다 불태워버릴 수도 없고…
작은 한숨과 함께 손에 든 펜만 빙글빙글 돌리던 석율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있는 이 서류들이 모두 자신의 공으로 치하된다면 모를까, 일은 자신이 다 하는 데 공은 모두 성 대리의 몫이라는 게 석율은 적잖이 아니꼬웠다.
…아, 시발, 좆같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욕설만 속으로 삼키던 석율은 짧게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눈을 슬쩍 움직였다. 느릿한 손길로 휴대폰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는 화면에 나타난 이름에 재빠르게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아저씨]
[잠깐 시간 괜찮아요?]
[어 완전 괜찮아]
조금 전까지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마치 손바닥 뒤집은 것처럼 가볍게 바뀌었다. 답장을 보내놓고서도 답신이 오는 잠깐을 기다리지 못해 다른 손끝으로 허벅지만 톡톡 두드리던 찰나, 손에 쥔 휴대폰의 진동에 석율은 얼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비상계단에서 봐요]
빠르게 답장을 확인한 석율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주위를 흘긋 둘러보았다. 다행히 부장님은 파티션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게 신경 쓸 겨를은 없어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손목시계를 한 번 들여다 본 석율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커다란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모습에 눈을 접어 웃은 그는 뛰듯이 계단을 내려가 그의 앞에 섰다.
“그러다 넘어져요.”
“괜찮아, 안 죽어.”
보자마자 쏟아지는 잔소리에 적당히 대답하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한 얼굴을 하는 그의 미간을 장난치듯 손끝으로 눌러 편 석율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상 쓰지 말고, 주름 생긴다.”
“…하여튼, 말이나 못 하면…”
시답잖은 말이 싫지는 않았는지 그래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짓던 석율은 그제야 본론을 꺼내놓았다.
“근데 왜 보자고 한 거야?”
“어…그게…”
뭐라 말할 듯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그래는 이내 입을 닫고서 눈치를 살피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기색에 석율도 덩달아 주위를 살피던 찰나, 불쑥 다가온 그래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 이윽고 입술에 닿았다 멀어지는 감촉에 석율은 커다래진 눈으로 눈앞의 그를 바라보았다.
“…장그래.”
“…그…오늘이 키스데이…래요, 그래서…”
“…….”
태연한 척하다가도 어물어물 시선을 피하는 그래의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먼저 불러내서 입을 맞출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수줍어 하는게 쓸데없이 귀여웠다. 귀여운 것도 귀여운 거였지만 뭐라고 말을 늘어놓느라 자꾸 움직이는 붉고 도톰한 입술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더 큰 일이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작게 소리 내 웃은 석율은 조심스레 그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다 좋은데…이건 키스가 아니고 뽀뽀잖아.”
“…회사니까 어쩔 수 없…”
항변하느라 입술이 벌어진 틈에 석율은 빠르게 입술을 붙였다. 저항하듯 그래가 어깨를 두들기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섞자 작게 몸이 움찔거렸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마구 몰아붙여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테지만, 두 사람이 있는 장소가 서로의 직장이고 지금은 업무시간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그대로 얼마간 더 입술을 물고 혀를 섞던 두 사람의 입술이 멀어졌다. 숨이 섞이는 거리에서 물끄러미 그래를 바라보던 석율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해줄 거면 제대로 해줘야지.”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안 들켰잖아.”
마지막 말에 그래가 입을 가로닫는 것을 바라보던 석율은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화 났어?”
“아뇨, 예상했었어서 화는 안 나는데…”
“안 나는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말을 따라하듯 되묻자 다시금 어물어물 시선을 피해버린 그래가 조그맣게 덧붙였다.
“…다음부턴 조심 좀 해요.”
“다음…이라는 건 또 언젠가 회사에서 키스해줄거란 말이네?”
“아, 이 아저씨가 진짜…!!”
노려보는 시선에 재차 소리 내 웃은 석율은 그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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