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산] 밀실

W. 적운






*






냉장고 속 식료품들을 확인하던 상디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식료품 창고가 터져 나가도록 쟁여놓았던 재료들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빵 한 조각도 먹지 못할 만큼의 식량난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크루들-특히 선장-이 배불리 먹기에는 조금 애매한 양이었다.

그나마 다음 섬까지의 항해가 얼마 남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어젯밤 들었던 나미의 말대로라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닷새는 걸릴 예정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이 배에 남은 식료품은 기껏해야 이틀 정도가 전부였고, 어떻게 배분을 잘 해도 사나흘이 전부였다.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어느새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상디는 작은 한숨과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실내에 있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깥의 청명한 햇살과 잔잔한 파도가 아주 조금 제게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제 속만 쓸데없이 복잡해서, 억지로 기분전환을 하듯 크게 숨을 내쉰 상디는 난간에 가볍게 몸을 기댔다.

다른 크루들은 저마다 실내에 있는 모양인지 갑판 위에는 보이지 않았고, 늘 그렇듯 놀기 좋아하는 세 사람-루피와 우솝과 쵸파-만이 잔디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여전히 난간에 기댄 채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찰나, 뭔가 생각난 듯 퍼뜩 몸을 일으킨 상디는 주방에 들어가 작은 꾸러미를 하나 챙겨 나왔다.






어이, 거기 굴러다니는 셋.”

상디! 나 배고파.”

그렇게 뛰어다니니 배가 고프지 당연히






제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배고프다는 말을 던지는 루피에게 가벼운 타박을 돌려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쉰 상디는 그들에게 방금 챙겨 나온 꾸러미를 던져주었다.






, 고기! 먹어도 돼?”

-, 먹으라고 준 거 아냐밥을 먹고 싶으면 밥값이나 하라고.”

우우- 나빴다-”






앞뒤 사정은 들을 생각도 없는 지 그저 먹지 말라는 말에 냅다 불평을 늘어놓는 세 명을 바라보던 상디는 턱짓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거, 미끼로 쓰라고 준 거니까. 굴러다니지 말고 얌전히 낚시나 해.”

우우-”

뭐 하나라도 낚으면 좋고, 해왕류 낚으면 더 좋고너네가 잡는 대로 오늘 식사가 달라지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정말?”

내가 먹는 걸로 거짓말 하겠냐, 낚기 전까지는 주방 출입 금지.”

알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기 조각 하나에 불만을 내비칠 때는 언제고, 맛있는 걸 해주겠다는 말에 금방 의욕이 샘솟아 낚싯대를 챙기는 셋을 바라보던 상디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료품을 나누고 정리하는 일에 꽤나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만큼 방해받지 않기 위해 낚시를 하라고는 했지만, 사실 숨겨진 목적은 식료품 털이범-주로 루피,쵸파,우솝 3인조-들을 주방에서 떼어놓기 위함이었다.

그런 제 의도를 알 리도 없이 그저 좋다고 난간에 쪼르르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셋을 바라보던 상디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앞문을 걸어 잠근 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론 식료품이 모자라는 것이 자신의 탓은 아니었다. 배가 터져나가도록 식료품을 쟁여놔도 먹성 좋은 선장 때문에 식료품은 언제나 모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크루들이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식량이 모자란다고 하면 다들 기꺼이 식량을 아끼는 데 도움을 줄 터였지만, 적어도 전투원 이전에 요리사로서의 자신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크루들이 식사를 거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찰나, 문득 아침 식사 시간의 모습을 떠올린 상디는 작게 입술을 감쳐물었다. 식료품 배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몫의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루피에게 밀어주고서 자신은 슬그머니 자리를 뜨던 모습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그에게 식료품이 떨어져간다고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으로 눈치를 채고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그의 행동이 제 기분을 퍽 상하게 했다는 점을 그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제 딴에는 도와주려고 했을 거라는 걸 알아서 차마 화도 낼 수 없었지만, 평소에 적의 기척이라거나 분위기를 읽어내는 눈치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이럴 때 써먹어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은 동료고 제 연인이라서, 술 말고는 딱히 먹은 게 없을 그가 괜히 신경이 쓰였다.






다 하고 주먹밥이나 만들어 줄까.”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늘어놓은 상디는 능숙하게 재료들을 손질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일에 몰두하던 찰나, 제 허리에 무언가 감기는 느낌에 상디는 몸을 굳힌 채 뒤를 돌아보았다.






뭘 놀라, 죄 지었어?”

, 미친인기척 좀 내고 다니면 안 되냐?”






괜한 화풀이라도 하듯 제 허리에 둘러진 팔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디는 다시금 제 앞에 놓인 재료들에 집중했다.






일 하는 거 안 보이냐. 앞문 잠겨있는데 어떻게 들어왔어?”

쵸파 방은 열려있던데.”







태연하게-혹은 뻔뻔하게-대답을 돌려주는 조로의 대답에 왠지 힘이 빠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면서 상디는 재료들을 정리한 통의 뚜껑을 닫았다. 그 때까지도 여전히 떨어질 생각이 없는 그의 팔을 바라보던 상디는 결국 들으라는 듯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거 좀 놓지?”

싫은데.”






묘하게 고집스런 말투에 괜한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조금 목소리를 낮춘 상디는 그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들킨다고, 멍청아.”

저 문도 잠갔거든?”






그러니까 여긴 밀실이라고, 지금.

아무렇지 않은 척 덧붙이는 대답에서 왠지 그가 토라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밀려온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억지로 숨기면서 태연하게 손을 씻은 상디는 그의 품 안에서 빙글 몸을 돌린 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우리 마리모 군.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문도 막 잠글 만큼?”

.”






그리고 돌아온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상디의 얼굴이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붉어지자, 그 반응에 가볍게 웃은 조로는 그를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너도 정말 이상한 데서 눈치가 없어, 가끔 보면.”

뭐 임마?”

밖에 낚시 하라고 시켜놨잖아?”

그래서?”

이런 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러고 있냐.”

…….”






딱히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반박할 수도 없이 조곤조곤 늘어놓는 사실에 할 말이 없어진 상디가 입을 다물자, 조로에게서 다시금 가벼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순순히 협조나 하라고.”

너도 협조 해, 그럼.”






이어지는 말에 조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손을 움직여 그의 뺨을 붙잡은 상디는 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몫으로 준 건 네가 다 먹어, 루피 주지 말고.”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던 찰나, 곧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깨달은 조로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대답에 칭찬이라도 하듯 가볍게 입을 맞춰 주자, 조로의 입술 끝이 가볍게 말려 올라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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